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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거벗은 한국사

일본은 왜 불량 조선인 박열을 두려워했나(3)

by 오꽃자매의 봄날 2025. 3. 11.

사형선고를 앞두고 올린 옥중 결혼식, 그리고 영원한 이별

박열은 담당 판사에게 고향에 계신 어머니에게 보낼 사진을 찍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가네코 후미코와 사진을 찍데 해달라고 요청한 것입니다. 보통은 여자가 의자에 앉고 남자는 그 옆에 똑바로 서서 사진을 찍었는데 두 사람은 평범하게 찍지 않았습니다. 둘의 포즈는 그 야말로 파격 그 자체였습니다.

조사실에서 사진을 찍은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책 벌거벗은 한국사)

 

그해 12월 두 사람은 옥중 결혼식을 올리게 됩니다. 그런데 이 결혼을 제안한 사람은 일본인 판사였습니다. 이런 대우는 박열이 황태자 암살 계획을 다시 순순히 자백하기 위한 방책이었습니다. 아무런 물증도 증거도 없는 상화에서 자백만이 유일한 대역죄를 확정할 수 있는 방법이었습니다. 1926226일 두 사람의 재판을 보기 위해 수많은 인파가 모여들었고 재판이 시작되자 박열은 성난 호랑이처럼 변했습니다.

 

천황이란 자는 강도단의 두목이다.!”

당신들 스스로 문명국이라 하지 않는가. 학살에 가담한 군인과 자경단의 자백을 받아내라! 조선인 유골이 묻힌 곳을 발굴하라. 유골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내가 광인임이 틀림없다!”

 

한바탕 소동과 같던 재판이 끝나고 두 사람의 재판 결과는 사형 선고를 받습니다. 박열은 자신이 이겼다며 오히려 기뻐했으며 후미코도 박열과 함께라면 죽음도 두렵지 않다며 같이 묻어주기를 바란다며 끝까지 남편과 함께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사형 선고받고 얼마 지나지 않아 천황의 이름으로 박열과 후미코를 무기징역으로 감형한다는 문서를 받게 됩니다.. 문서를 받고 갈기갈기 찢어 버렸지만 일본의 신문에는 두 사람이 천황에게 경의를 표하고 머리를 조아렸다며 온갖 가짜 뉴스를 보도하였습니다. 일본 재판부는 두 사람을 감형해 주면서 일본 제국과 천황의 이미지를 관리하려 한 것입니다. 무기징역으로 감형된 두 사람은 각각 다른 형무소로 이송되었고 3개월 후 후미코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미씸쩍은 점이 너무나 많았지만 확인할 방법은 없었습니다. 박열은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혀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살아내야만 했습니다.

 

22년 만에 출옥해 마주한 조선인들의 환영

시간이 흘러 19451027, 박열은 형무소 밖으로 나옵니다. 무려 22. 광복 직후에 많은 독립운동가가 풀려났지만, 대역죄인이라는 이유로 박열을 쉽게 석방해 주지 않았습니다. 21살이었던 청년은 어느덧 마흔네 살의 중년이 되어서야 형무소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22년만에 출옥하는 박열을 맞이하기 위해 형무소 근처 아키타 역 광장에 무려 15,000여 명의 사람들이 모여 있었습니다. 옥중에서도 끝까지 신념과 사상을 바꾸지 않은 박열에게 감동한 조선인들이 그가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온 박열은 백범 김구와 함께 식민 지배에서 벗어난 나라를 바로 세우는 데 필요한 일을 해나갔습니다. 윤봉길 의사의 유해를 일본 땅에서 직접 찾아왔고 효창공원 삼의사 묘역에 묻힌 이봉창, 백정기 의사가 안장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했습니다.

 

고국으로 귀환, 피할 수 없던 전쟁의 비극

고국에 돌아오고 약 1년 뒤에 6.25 전쟁이 발발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 북한은 독립운동가를 비롯해 지식인 등 명망 있는 사람을 강제로 끌고 갔습니다.

우리는 독립운동가, 지식인들이 자발적으로 넘어올 만큼 좋은 나라다.”

일본 형무소에서 22년을 보낸 박열은 이번에는 북한 인민군에 의해 북한을 끌려가고 맙니다. 그 이후 박열이 어떤 생활을 했는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고 72세에 사망했다는 소식만 전해졌습니다. 박열이 사망하고 15년이 흐른 1989년 대한민국은 박열의 공헌을 기리기 위해 건국훈장을 추서 했으며 이때 박열과 함께 독립운동의 공로를 인정받아 건국훈장을 같이 받은 사람은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입니다.

 

불량한 조선인을 자처하며 일본에 맞서 뜨겁게 싸운 독립운동가 박열은 자신이 지은 이름처럼 그야말로 영웅의 면모를 잃지 않고 불꽃같은 삶을 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책 "벌거벗은 한국사(근현대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