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혜옹주2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이유(2) 일제의 계략에 휘말려 모국을 떠나 적국으로1925년 3월 덕혜옹주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일제가 덕혜옹주의 일본 유학을 결정해 버립니다. 이대로 뒀다간 덕혜옹주를 중심으로 다시 독립운동의 불씨가 피어오르지 않을까 하고 우려해 우리 민족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도교에 도착한 덕혜옹주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던 오빠 영친왕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덕혜옹주는 영친왕의 집에서 지내며 도교 여자학습원으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덕혜옹주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밝고 명랑했던 덕혜옹주가 마음에 묵직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조용한 아이로 변한 것입니다. 덕혜옹주는 물이 담긴 보온병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독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늘 불안해서 어.. 2025. 3. 12.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이유(1) 덕수궁의 보물 늦둥이 고명딸의 탄생1912년 5월 25일, 따사로운 햇살이 덕수궁을 비추고 있던 어느 아름다운 봄날!아이의 탄생을 기다리며 초조해했던 고종은 이날 태어난 덕혜옹주로 하늘로 날아갈 듯 크게 기뻐했습니다. 고종은 아들만 있고 딸이 한 명도 없었기에 유독 기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슬하에 9남 4녀의 자녀를 두었지만, 많은 자녀가 일찍 죽고 세 아들만이 살아 있었습니다. 환갑에 아주 귀하디귀한 고명딸을 얻은 것입니다. 고종의 품에서 행복했던 유년시절그런데 왜 덕혜옹주는 공주가 아닌 옹주로 불린 걸까요? 덕혜옹주의 어머니는 양귀인이라는 후궁이었습니다. 후궁의 딸은 공주가 아니라 옹주로 불렸습니다. 고종은 덕혜옹주를 데리고 함녕전으로 데려갑니다. 함녕전은 덕수궁에 있는 고종의 침전이었습니다. 왕만.. 2025. 3. 11. 이전 1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