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의 계략에 휘말려 모국을 떠나 적국으로
1925년 3월 덕혜옹주가 열네 살이 되던 해에 일제가 덕혜옹주의 일본 유학을 결정해 버립니다. 이대로 뒀다간 덕혜옹주를 중심으로 다시 독립운동의 불씨가 피어오르지 않을까 하고 우려해 우리 민족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하려고 한 것입니다. 도교에 도착한 덕혜옹주는 일본에 볼모로 끌려갔던 오빠 영친왕이 마중 나와 있었습니다. 그렇게 덕혜옹주는 영친왕의 집에서 지내며 도교 여자학습원으로 편입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덕혜옹주는 이전과 다른 모습을 보이기 시작합니다. 밝고 명랑했던 덕혜옹주가 마음에 묵직한 자물쇠를 걸어 잠그고 조용한 아이로 변한 것입니다. 덕혜옹주는 물이 담긴 보온병을 늘 몸에 지니고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독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 때문에 늘 불안해서 어머니의 조언대로 항상 보온병을 지니고 다녔습니다.
어머니의 임종도 지키지 못한 망국의 옹주
그렇게 눈과 귀 그리고 마음까지 완전히 닫아버리고는 더 이상 웃지 않게 되었습니다. 이 모든 암담한 생활을 청산할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고국으로 돌아가는 것밖에 없었습니다. 그로부터 4년 뒤 덕혜옹주가 조선으로 귀국하는 일이 생깁니다. 어머니 양귀인이 병으로 세상을 떠났기 때문입니다. 어머니의 빈소 앞에 선 덕혜옹주의 가슴은 천 갈래로 찢어졌습니다. 일제는 덕혜옹주에게 상복을 입지 못하도록 금지시킵니다. 어머니의 신분이 미천하다는 이유로 상복을 입지 못하게 한 것입니다.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고 일제의 강요로 5일 만에 서둘러 일본으로 돌아가야만 했습니다.
결국 병이 되고 만 마음속 응어리
일본으로 귀국한 덕혜옹주는 여전히 친구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누구와도 대화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온종일 방에 쳐박혀 나오지 않았고, 아무것도 먹지 않았으며 등교를 거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밤중에 덕혜옹주가 사라졌습니다. 영천왕 부부는 모든 사람들을 총 동원해 온 집안을 샅샅이 뒤졌습니다. 덕혜옹주는 정신이 없는 상태로 멍하니 정원을 걷고 있었으며 사람을 눈앞에 두고도 멍하지 있기도 했습니다.
진찰결과 ‘조발성 치매’라는 진단을 받았습니다. 현재의 ‘조현병’을 말합니다. 아버지의 죽음에 이어 일본으로 강제 유학, 어머니의 죽음까지 연이은 비극으로 마음속에 응어리가 쌓이고 또 쌓이다가 결국 버티지 못하고 참담하게 무너져 버린 것 같습니다. 다행히도 영천왕 부부의 보살핌으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갔습니다.
대한제국의 황녀 일본의 백작 부인으로 전락하다
스무 살이 되는 다음 해에 일본인과 정략결혼을 하라는 통보를 받습니다. 일본 국내성은 덕혜옹주의 결혼상대와 시기까지 마음대로 정하고 덕혜옹주에게 통보만 했습니다. 결혼 상대는 소 타케유키라는 인물로 도교대학교 영문학과에 재학 중인 엘리트였습니다. 또 백작의 지위를 가진 귀족의 신분이었습니다. 일본 귀족과 결혼하면 덕혜옹주는 일본 귀족 가문의 일원이 됩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대한제국 황녀의 상징적 권위까지 사라지게 됩니다. 일제가 노린 게 바로 이런 것입니다.
덕혜옹주의 결혼 소식을 당시 국내 언론들은 대대적으로 보도했습니다. 그런데 남편 소 타케유키를 지우고 덕혜옹주만 사진에 있었습니다. 일본인의 얼굴을 삭제함으로써 우리나라 국민의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대변하려 한 것이었습니다. 이 결혼식 보도 이후 오랫동안 덕혜옹주의 소식은 조선에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일본에 결혼한 여성은 남편을 따라서 성을 바꾸게 되는데 대한제국 황실의 후예가 성을 버리고 일본식으로 바꾸는 일은 우리나라에서는 용납하기 어려운 일로 국민의 상실감은 어마어마했습니다. 그렇게 대한제국 황족의 신분에서 일본의 백작 부인으로 살아가면서 고국과 국민에게서 점점 잊혀 가고 있었습니다.
책 "벌거벗은 한국사(근현대편)" 에서
'벌거벗은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무신정변(1) (0) | 2025.03.13 |
---|---|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이유(3) (2) | 2025.03.12 |
고종의 막내딸 덕혜옹주가 정신병원에서 발견된 이유(1) (1) | 2025.03.11 |
일본은 왜 불량 조선인 박열을 두려워했나(3) (1) | 2025.03.11 |
일본은 왜 불량 조선인 박열을 두려워했나(2) (1) | 2025.03.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