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골군의 발목을 잡은 귀주성 사람들
북방 일대의 여러 성을 접수한 몽골은 다른 나라들처럼 고려 또한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몽골군의 부대가 고려 귀주성에 묶여 꼼짝달싹 못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귀주성은 강감찬 장군이 거란의 침입에 맞서 큰 승리를 거두었던 곳이었습니다. 귀주성은 북방 지역의 대표적인 군사 방어지로, 몽골군이 고려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꼭 통과해야만 하는 길목이었습니다. 당시 귀주성에 있던 군사들은 약 2천 명이었습니다. 당시 몽골이 사용하던 무기 중에는‘운제’라는 것이 있었는데, 구름 ‘운’ 자와 사다리 ‘제’자를 써서 그리 불렀는데, 구름에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라는 뜻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사다리 장갑차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제는 성벽을 넘는데 도움이 되는 유용한 공격 무기였습니다. 이 운제를 타고 몽골 병사들이 공격을 하는 순간, 귀주성 사람들은 거세게 반격했습니다. 큰 칼의 일종인 ‘대우포’로 운제를 부숴버렸습니다. 대우포가 정확히 어떻게 생겼는지 전해지지 않습니다만, 그 파괴력이 어마어마했던 모양입니다.
귀주성이 뚫리면 몽골이 고려 전체를 삼킬 수 있다는 것을 잘 알기에 그들은 쉽게 물러서지 않았습니다. 군사들은 물론이거니와 성안에 사는 일반 백성들까지 모두 몽골군과 맞서 싸웠습니다. 몽골군은 이렇게 공격당하면서도 끝내 항복하지 않은 경우는 보지 못했다며, 적군이지만 귀주성 장수들에게 감탄했다고 합니다. 적에게까지 존경과 극찬을 이끌어낼 정도였다고 합니다.
기적처럼 승리한 귀주성 전투
귀주성 사람들은 온갖 수단과 방법을 총동원해 몽골군을 막아냈습니다. 전투는 무려 4개월이나 계속됐습니다. 장기간 이어지는 전투였던 만큼 지원군이 간절했지만, 아무도 이들을 도우러 오지 않았습니다. 지원군 없이 장기간 계속된 전투는 귀주성의 모든 이들이 온 힘을 다해 싸우는 와중에 갑자기 귀주성 남쪽 문을 둘러싼 몽골군들이 달아나기 시작했습니다. 장군 김경손이 군사들을 이글고 성문 밖으로 나가 목숨을 건 기습공격을 감행했기 때문입니다. 김경손은 정주성에 있던 장군이였는데 근방의 성이 점령당하자 귀주성에서 항쟁을 이어가기 위해 여러 장군이 모여들었는데, 김경손도 그중 하나였습니다.
몽골군을 쫓아낸 병사들은 단 12명이었습니다. 김경손 장군과 12인의 결사대, 총 13명이 귀주성 남쪽을 공격하던 몽골군을 쫓아버린 것입니다. 김경손은 몽골군을 후퇴시킨 뒤 유유히 성안으로 들어왔습니다. 귀주성의 지휘관 박서는 죽을 각오로 몽골군과 맞서 싸운 김경손에게 눈물을 흘리며 큰절을 올렸습니다. 이 모습을 본 김경손 또한 울면서 마주 절했다고 합니다.
결국 몽골군은 귀주성 함락을 포기한 채 말머리를 돌렸습니다. 목숨을 건 사투 끝에 귀주성 사람들이 결국 전투에서 이긴 것입니다. 믿을 수 없는 승리였습니다.
화친을 맺고 결국 항복하는 고려
귀주성 사람들만 몽골군에 용감하게 맞서 싸운 것은 아닙니다. 농민저항군인 초적들도 전쟁이 일어나사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몽골군과 싸웠습니다. 정부에 대한 불만이 있었음에도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실제로 마산의 초적 우두머리는 자신의 군사 5천 명을 이끌고 전쟁에 참여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결국 고려 정부는 몽골에게 항복하고 맙니다. 귀주성 전투에서 이기고 기뻐하던 박서 또한 성 밖으로 나와 항복하라는 고려 왕실의 명을 받게 됩니다. 귀주성이 4개월 동안 중앙군의 도움 없이 힘겹게 성을 지키는 동안, 개경이 함락당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고려는 몽골과 화친 협상을 시작했습니다. 화친은 나라와 나라 사이에 다툼이 없이 가까이 지낸다는 의미지만 실제로는 고려가 몽골을 황제로 받들겠다는 뜻이었습니다.
몽골의 살리타는 이를 거절합니다. 귀주성이 버티고 있기 때문에 협상을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고려 정부는 박서에게 항복하라는 명령을 내린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몽골은 박서를 죽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고려정부는 차마 죽이지는 못하고 박서를 관직에서 해임시킵니다. 영웅 박서에게 남겨진 것은 포상은커녕 관직을 빼앗긴 채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이었습니다.
1232년 음력 1월 11일, 자신들의 뜻을 이룬 몽골군이 고려에서 철수하여 몽골의 첫 번째 침입은 막을 내리게 되었습니다.
책 "벌거벗은 한국사(사건편)" 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