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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몽전쟁4

여몽전쟁(4) 몽골의 5차 침입 돌아온 김윤후의 활약고려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몽골은 또 쳐들어 왔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약속이란 몽골의 새 황제가 고려에 사신을 보내 요구했던 것들입니다.첫 번째 요구는 ‘국왕친조’로, 고려의 왕이 직접 몽골까지 와서 항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두 번째 요구는 ‘출륙환도’로 강화도를 나와 개경으로 다시 수도를 옮기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여러 번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결국, 다섯 번째 여몽전쟁이 시작되었습니다. 1253년 몽골은 1만 명의 군사를 고려로 보냈습니다. 1차 침입 이후 무려 22년이나 지났지만 참혹한 전쟁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번에는 더욱 잔인해졌습니다. 몽골군이 휩쓸고 간 자리에는 고려 백성들의 시체가 산을 이루었습니다. 닥치는 대로 사람들.. 2025. 3. 14.
여몽전쟁(3) 결정된 강화 천도 끝나지 않는 백성들의 고난몽골에 항복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최 씨 정권은 충격적인 선언을 합니다. 수도를 개경에서 강화도로 옮기겠다는 것입니다. 강화도는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이었습니다. 수도는 보통 교통이 발달한 곳에 있기 마련인데 섬으로 옮긴다는 건 굉장히 이례적인 일이었습니다. 다시 전쟁이 일어나면 수도롤 방어해야 하는데, 1차 전쟁을 통해 개경에 머무는 한 몽골군을 막기가 불가능하고, 몽골에는 바다가 없어 몽골군이 배를 타고 싸우는 해전에 약했기 때문에 몽골군이 강화도를 쉽게 점령할 수 없을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이들이 강화도에 도착해서 가장 먼저 한일은 성벽을 짓고 군사를 훈련시키는 것이 아니라, 놀랍게도 자신들이 지낼 궁궐을 짓는 것이었습니다. 이 일은 당연히 백성들의.. 2025. 3. 14.
여몽전쟁(2) 몽골군의 발목을 잡은 귀주성 사람들북방 일대의 여러 성을 접수한 몽골은 다른 나라들처럼 고려 또한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몽골군의 부대가 고려 귀주성에 묶여 꼼짝달싹 못 하고 있었습니다. 이곳 귀주성은 강감찬 장군이 거란의 침입에 맞서 큰 승리를 거두었던 곳이었습니다. 귀주성은 북방 지역의 대표적인 군사 방어지로, 몽골군이 고려 내륙으로 진출하기 위해 꼭 통과해야만 하는 길목이었습니다. 당시 귀주성에 있던 군사들은 약 2천 명이었습니다. 당시 몽골이 사용하던 무기 중에는‘운제’라는 것이 있었는데, 구름 ‘운’ 자와 사다리 ‘제’자를 써서 그리 불렀는데, 구름에 닿을 만큼 높은 사다리라는 뜻입니다. 오늘날로 치면 사다리 장갑차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운제는 성벽을 넘는.. 2025. 3. 14.
여몽전쟁(1) 고려에 쳐들어온 몽골은 얼마나 강한 나라였나몽골이 고려에 쳐들어온 13세기경 몽골이 재배한 영역은 중국은 물론이고 러시아, 중동, 일부 동유럽 국가까지 정복하며 인류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당시 세계의 절반 가까운 땅이었지요. 몽골을 초강대국으로 이끈 지배자는 칭기즈칸입니다. 칭기즈칸은 기마부대를 이끌며 수많은 나라를 정벌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칭기즈칸의 몽골군은 수가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몽골군은 의도적으로 무자비한 살육을 행해 악명을 드높였습니다. 잔인한 행실로 공포심을 조성하여 몽골군이 오고 있다는 소식만 듣고도 항복을 준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또 다른 전략은 포로들을 몽골군으로 위장시켜 대군처럼 보이게 했다고 합니다. 그렇게 칭기즈칸은 동서양에 걸친 대제국을 건설했습니다. 의문의 .. 2025.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