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의 두 지배층 문신과 무신
고려에는 무반과 문반을 합쳐 양반이라고 불렀습니다. 무반은 오늘날의 군인, 경찰과 같은 일을 한 무신의 반열을 가리키는 말이고, 문반은 공무원이나 법관, 국회의원 등의 역할을 하는 문신의 반열을 가리키는 말이었습니다. 고려 시대에는 관직의 높낮이를 총 18단계로 구분되어 있는데 우선 1 품부터 9품까지 나누고, 같은 품계를 다시 ‘정’과 ‘종’으로 나누었습니다. 문신과 무신 모두 3품까지는 될 수 있었지만, 최상위 등급인 1품과 2품에 오를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문신뿐이었습니다.
2품 이상의 고관은 ‘재신’과 ‘추밀’이었는데, 이를 함께 지칭하여 ‘재추’라고 했습니다. 재추는 국가정책을 논의하는 관직으로, 왕을 제외하면 고려에서 제일 높은 직책이었습니다. 문신은 재추에 오를 수 있었지만 무신은 재추가 될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효율적인 국가 운영을 위한 역할분담의 성격이 있었기 때문에 무신들의 불만은 없었습니다.
당시 고려의 최고 회의 기구인 재추회의에서 국가의 중대사를 논하였는데 이 자리에 무신은 제외되었습니다. 고려사회는 문필 능력을 중시하는 풍조와 맞물려 점차 ‘무’보다 ‘문’을 우대하게 되었습니다.
만연한 무신 멸시! 무신, 평생의 원한을 품다
고려사에서 묘사하기를 ‘그의 용모가 웅장하고 뛰어나며 눈동자가 네모났고 이마가 넓었다. 살결이 희고 수염이 아름다웠으며 신장이 7척이나 되어 그를 바라보는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라고 묘사한 견룡군의 장교 정중부이다. 견룡군은 왕을 호위하는 군대였습니다. 1144년 왕이 새해를 맞이하며 연회를 베풀던 자리에서 정중부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꾼 사건이 일어납니다. 연회 중 갑자기 한 문신이 촛불을 들고 오더니 정중부의 수염을 태워버린 것입니다. 고려인들은 수염을 외무에서 중요하게 여겼으며 정중부의 수염은 역사서에 기록될 정도로 아름다운 수염이었으니 정중부 입장에서는 무척 화가 났을 겁니다.
이 무례한 일을 벌인 이는 김돈중. 정중부보다 한참 어린, 이제 막 과거에 급제한 새내기 문신이었습니다. 정중부가 무신이라 얕잡아 본 것입니다. 정중부는 화를 참지 못하고 김돈중에게 주먹을 휘둘렀습니다. 왕이 이 모든 과정을 지켜보았음에도 불구하고 정중부가 벌을 받을 위기에 처했습니다.
김돈중의 아버지는 바로 고려 최고의 정치가 김부식이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삼국사기>를 엮은 인물입니다. 지금으로 따지면 국무총리와 같은 최고위직에 올라 있던 인물입니다. 김동준은 과거에 2등으로 합격했지만 김부식의 아들이라는 이유로 1등으로 올려주었고, 곧장 내시로 임명했습니다. 김부식은 왕에게 아들을 때린 정중부를 엄벌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왕은 처벌을 원하지 않아서 정중부를 피신시킵니다.
정중부는 김돈중에게 받은 치욕을 오랫동안 잊지 않았으며 이 사건으로 무신들이 문신들에게 큰 분노를 품게 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됩니다.
의종의 연회정치서 소외당한 무신들의 설움
수염 사건이 일어났을 당시 고려의 왕은 제17대17 인종이었습니다. 무신들의 쿠데타가 일어난 것은 그의 아들 의종이 왕위에 있을 때입니다. 의종은 인종의 적장자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부모에게 인정을 받지 못하고 왕의 자질을 갖추기 위한 공부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종은 큰아들보다 둘째 아들을 더 사랑해 의종의 동생을 후계자로 삼고 싶어 했습니다. 그런데 의종의 스승이자 인종이 신임했던 정습명이라는 신하가 마음을 다해 의종을 보필하였고, 의종은 그의 지지에 힘입어 겨우 왕이 될 수 있었습니다.
어렵게 왕위에 오른 의종은 항상 불안했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측근 세력을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견룡군을 강한 부대로 만들고 세력을 키워 왕권을 강화했습니다. 또 왕의 곁에서 일하는 환관과 내시 세력 또한 중점을 두고 키웠습니다. 측근 세력을 통해 왕권을 강화하려 했던 의종은 걸핏하면 궁에서 연회를 벌였습니다. 더욱 많은 측근 세력을 만들고 또 그들이 단단하게 결속하기를 원했던 것입니다.
하지만 이에 반대하는 신하들도 물론 있었습니다. 국정을 논의하는 일은 등한시하고 연회만 아주 열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의종의 사치와 향락을 보다 못해 관직을 버리고 떠나는 신하들도 있었습니다. 왕이 연회를 즐기는 동안에도 견룡군은 연회에 참석 못하고 경비를 섰습니다. 다른 무신들과 군인들은 수준 낮은 처우를 받아 계속 분노만 쌓여만 갔습니다. 게다가 연회를 좋아하는 왕은 경치 좋은 곳에 정자나 연못을 많이 만들었는데, 이 공사에 동원되는 인력 또한 대부분 군인이었습니다. 무신과 군인의 불만은 점점 커져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책 "벌거벗은 한국사(사건편)" 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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