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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일운동2

열입곱살 유관순은 어떻게 거리를 태극기로 물들였나(2) 횃불을 들어 되살린 거족적 만세운동의 불씨 만세운동이 끝나고 며칠이 지난 3월 5일, 두 명의 남학생이 ‘조선 독립’일 적힌 깃발을 들고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습니다. 이 신호탄을 삼아 많은 사람이 함께 만세를 부르며 나아갔고 이 군중 속에는 유관순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날은 일본 경찰들이 시위 중인 사람들을 무차별적으로 구타하며 검거하였습니다. 유관순과 이화학당 학생들도 여럿 붙잡혔는데 바로 석방되었습니다. 이화학당의 교사인 외국인 선교사의 강력하게 항의했습니다. 일본도 국제사회의 여론을 움직일 수 있는 외국인 선교사들을 무시하기는 어려웠습니다.  3월 10일 조선총독부는 휴교령을 선포했습니다. 학생들을 모일 수 없도록 하기 위한 것입니다. 학교가 문을 닫자 유관순도 어쩔 수 없이 고향 천안으로.. 2025. 3. 10.
열일곱살 유관순은 어떻게 거리를 태극기로 물들였나 (1) 소녀 열사의 유년 시절 1902년의 어느 날 충남 천안시 병천면 용두리의 한 초가집에서 3남 2녀 중 둘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그녀의 삶에 큰 영향을 준 장소가 바로 유관순 생가 앞에 있는 매봉 교회였습니다. 용두리 마을의 첫 기독교 신자는 바로 유관순의 증조부 유빈기와 육촌 할아버지 유승백이었습니다. 유관순도 어려서부터 자연스럽게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유관순은 종교로 인해 남녀 구분 없이 모두가 존중받아야 마땅하다는 평등사상 속에서 자라날 수 있었고, 그런 그녀에게 교회는 놀이터이자 배움터였습니다. 이에 따라 생겨난 이웃과 나라를 사랑하는 태도, 또 내 나라가 존중받길 바라는 마음에서 피어오른 여러 고민이 독립운동으로 확장되었다고 보입니다.  유관순은 어려서부터 씩씩하고 장난기가 가득했으며 친구들.. 2025. 3. 9.